Diary

3년차 개발자의 회고록 (비전공자 취업 그 후)

오후 6시의 봄 2023. 1. 14. 21:27

 티스토리 블로그에는 어떤 글을 첫 글로 올리면 좋을까 약간의 고민을 했다. 내가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부터 방법과 현재까지 쭉 돌아보도록 하겠다. 앞의 내용은 개발자의 삶과는 영 관련이 없으니 개발 이야기만 읽고 싶은 사람은 2020년으로 스킵하면 되겠다.

목차
🤦‍♀️2017년,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학생
👩‍💻2017년~2019년, 전직을 꿈꾸던 직장인
🎲2019년, 갈림길에서 개발을 선택한 백수
✌️2020년, 국비지원 학원 수료
🌃2020년~2022년, 취업 후 개발자로서의 삶
❗2023년, 현재

🤦‍♀️2017년,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학생

 휴학 없이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세상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고 싶었던 선배들과 동기들은 이미 3학년 때부터 적성에 맞을 것 같은 실험실을 선택하여 실험을 배우거나 대학원을 준비했다. 졸업을 한 뒤 실험실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하기에는 살짝 늦은 감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생명과학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전공을 살리지 않은 이유를 타인에게 설명할 때 내가 느낀 실험은 '요리'같다고 한다. 같은 조건, 같은 재료가 주어져도 천차만별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실험 수업을 수강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좋아하지 않다 보니 조금의 차이를 나타내는 실험의 디테일을 지키고 싶지도 않았고, 결과도 엉망이니 더욱 재미가 없었고, 재미가 없어도 성적은 어떻게든 이론 시험만 잘 보면 A+를 받을 수 있었으니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던 거다. 

 이렇게 재미가 없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 생각에 졸업 후 취업 준비는 저 편으로 미뤄졌다. 그러다 부모님께 용돈 타서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일 무렵...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때 만들어둔 영어점수 하나로 이력서를 휘갈겨 첫 취업에 성공했다.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2017년~2019년, 전직을 꿈꾸던 직장인

 내가 취업한 회사는 15인 남짓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때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당일, 1박 2일의 캠프나, 특정 지역의 여러 학교를 대상으로 특강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했다. 가끔 운영인력이 부족할 때 직접 운영 업무를 하기도 했다. 내가 운영을 했던 프로그램 중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아두이노 코딩 특강이 있었다. 그때 특강을 진행한 선생님은 40대 여자분이셨고, 컴퓨터 공학과 전공을 한 대기업 개발자 출신으로 현재는 프리랜서로 특강을 진행하고 계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기획자나 단순 사무 편집자로 쭉 일한다고 했을 때 내가 대단한 재능이 없는 한 저분처럼 중년 여성이 되어도 이만한 페이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기획자 체질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왜냐? 재미가 없었으니까.

2019년 드림레터

 2019년에는 매주 중고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발행되는 진로소식지 드림레터 원고 작업을 맡았다. 졸업 후 시간을 의미 없이 버리긴 아까우니 돈이라도 받으면서 회사를 다니는 경험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진로와 관련된 글들을 접하고, 직접 써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획이나 서비스 프로그램 운영하는 업무가 정말 내게 맞는 것인가? 난 이게 재미있나? 하고 싶나? 비전이 있나? 이런 생각 말이다.

 마침  당시 작은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무가 전부 달랐다. 나는 기획자, 편집자에 가까운 롤을 맡았고 그 옆은 웹 디자이너, 그 옆은 영상 PD 및 편집자, 그 옆은 개발자, 그 옆은 운영 MC 등... 다양한 직군을 접하다 보니 나도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디자이너, 영상편집자, 개발자 같은 기술직 말이다. 나이가 들어도 업무에 배리에이션을 주어 강사로도 일할 수 있고, 프리랜서로 외주 업무를 맡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일들.

 

 

🎲2019년, 갈림길에서 개발을 선택한 백수

 2019년 여름, 1년 반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직 사유는 철저한 내 인생 계획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팀장과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서 내일채움공제 1년 6개월만 채우고 때려치웠다.. 에 가깝다. 뭔가 준비를 하고 퇴사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4개월 정도 놀기만 하다가 퇴직금과 내일채움공제로 받은 돈을 다 써갈 때쯤 다시 이력서를 휘갈겼다.

 막상 전 직장에서 일했던 이력으로 새로 취업하려고 보니, 인생의 도돌이표 같은 순간이 다가왔다. 졸업 후 취업을 할 때랑 똑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돈은 없으니 일은 해야겠는데,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다.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변수가 하나 생겼다. 백수의 나는 전 직장 근무 경험이 생겨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던 일들이 재미있어 보였다. 직무를 바꿔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간접경험으로 알게 된 직업은 디자이너, 개발자, 영상편집자였기 때문에 그 3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자 했다. 직무에 대한 호감도는 디자이너 > 개발자 > 영상편집이어서 영상 편집을 걸러냈다. 그리고 디자이너랑 개발자의 업무 강도를 생각해 보니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경력을 쌓으면 두 직업 다 프리랜서나 강사로 전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페이를 생각했을 때, 나는 개발자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0년, 국비지원 학원 수료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갑자기 개발자가 되겠다고 6개월짜리 풀스택 개발자 양성 과정을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충동적으로 집 근처 학원으로 수강신청을 마친 뒤 학원 생활에 집중하며 정보처리기사 필기도 취득했다. 다들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원체 컴퓨터로 작업하는 걸 뭐든 좋아하는 성향이라 개발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빠르고, Ctrl+Z가 있고,  작업의 목표가 비교적 확실하며 무엇보다도 재밌었다.  빈 종이를 두고 끙끙 머리를 싸매며 기획을 '해내야' 하던 때와 달라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나는 개발을 시작하기 전, 이게 맞는지 알아볼 수 있나?라고 물어보면 두 가지를 대답해 줄 것이다. 1) 먼저 컴퓨터 작업이나 효율적인 단축키에 친숙한(윈도우, 파워포인트, 엑셀, 포토샵 등 tool을 사용한 어떤 작업이든) 사람이라면 개발을 시작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하다. 아날로그 작업에 익숙한 사람들이 컴퓨터 작업에 유난히 힘들어했던 것 같다. 단축키 같은 것도 잘 모르고.. 효율적으로 툴 사용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에게 개발 작업은 script를 써 내려가는 것도 벅차게 느껴졌던 것이다. 2) 다음은 기본적인 영어실력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겠다. 영어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은 코딩도 어려운데, 구글링까지 힘들다. 번역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1과 2가 모두 안 되는 사람은 개발을 하면 안 되는 건가?라고 물으면 또 아니라고 할 것이다. 6개월 간의 수업 중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강사님이 보여주신 아래 영상을 처음 본 순간이다.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재생하기 전에 토스트를 만드는 방법을 1번부터 넘버링을 해서 생각해 본 뒤 영상을 틀어보기를 추천한다. 

 

 

 처음 이 영상을 본 순간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정말 엉망진창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영상 속의 4~7세로 보이는 어린이랑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게 사람들이 코딩교육을 통해 배우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이구나... 를 깨닫고 작업할 때 생각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쪼개려고 노력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이 내용이 흥미롭다면 개발을 직무로 선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2020년~2022년, 취업 후 개발자로서의 삶

 수료를 8월 중순에 하고, 여러 군데 면접을 봤다. 가고 싶었는데 떨어진 회사도 있었고, 붙었는데 고사한 자리도 있었다. 그러다가 규모가 꽤 있는 중소기업에 AI면접과 2차 면접까지 총 3차로 면접을 진행한 뒤 풀스택 개발자로 취업에 성공했다. 인턴 초봉은 3300으로 마음에 들었고, 2달간 기술교육을 진행한 뒤 SI와 SM 사이트에 배치되는 시스템이어서 회사 프레임워크에 적응한 뒤 발령이 나는 구조였다. 전국구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여서 SI는 지방이나 해외에서 근무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서울에서 근무하는 프로젝트 팀을 지망했고, 그대로 본사 발령을 받게 되었다.

 우리 팀은 SI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고, SM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포지션에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SM팀이었으나 유지보수보다는 신규 작업을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은 부서였다. 업무 자체도 내가 기존에 했던 교육 분야와는 아예 다른 새로운 업무여서 익히고 배우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비전공자라 부족하진 않을까?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에 근무하던 분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는 편견이 없던 것이 다행이었다. 발령 후 첫 회의에서 '비전공자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일은 시켜봐야 알아. 하는 놈은 시키면 알아서 잘해.' 하시던 팀장님이 아직도 기억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괜찮다면 날 도와주고 이끌어줄 동료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업무 분담이 잘 된 편이라 화면 개발 시 html, css 디자인이나 업무 기획은 다른 사람이 다 해주기 때문에 나는 개발만 하면 됐다. 프레임워크로 작업할 내용이 제한되어있고 참고할 소스는 많아서 작업 속도가 더뎌지는 일은 없었으며 대단히 어려운 스킬을 사용해야하는 작업도 적어 나와 전공자들에게서 역량적으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정말 개발'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회사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물론 같은 중소기업이어도 이전 회사와 다르게 직원 수는 500명이 넘어가지만) 난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접할 수 있었다. 단순히 개발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업무 외에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다. 신규화면 개발 및 기존 화면 유지보수, 메모리 사용 개선, 데이터 프로비저닝, 쿼리 튜닝, 인터페이스 관련 업무(장비, 전광판 등), 관련 문서 작성, 사용자 교육까지 내가 이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려고 열심히 했다. 쿼리 작업을 위해 자격증도 취득하고 꾸준히 노력했다. 꽉 찬 2년 차가 되어갈 무렵, 인사 평가로 사원인데 대리급으로 일을 하는 것 같다는 멘트가 들어있어 가슴 벅찼던 날도 있다. 

 직무가 만족스럽지 않은 점은 딱히 없었다. 기획자로 일하면서 백지에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그려내야 하는 나날들이 스트레스였던 적이 많았는데 개발자는 그럴 일이 없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을 이미 걸은 사람들이 많을뿐더러, 이 사람들은 꽤나 친절해서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의 가이드를 문서화해 두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불만이 점점 생겼다. 우리 팀이 적자부서여서 팀원들에게 눈칫밥을 배부르게 먹이곤 했다. 그리고 IT회사면서 임원들 중 개발자의 비율이 적었다. 특히 우리 본부를 담당하는 임원은 기술적인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용자 서비스와 돈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팀장님, 파트장님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근본적인 불편함을 개선하거나 솔루션의 발전을 위한 개발을 해내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불만을 제기하는 사용자의 문제만 겨우 틀어막고 있어 곧 터질 항아리의 겉에 진흙을 덧바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저연차인 내가 보고 느꼈으니 내 선배들은 어땠을까? 뒤를 따라 걷고 싶었던 멋진 선배들이 하나 둘 이직했다. 나는 경력도 없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이직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일단 경력 이직도 2~3년을 꽉 채워야 가능할 것 같았다. 이쯤에 나는 내가 맡은 파트의 운영 업무를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사수가 타 팀으로 발령 나서 혼자 파트를 도맡게 되었다. 앞으로 내 업무를 온전히 담당하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있겠으나, 현재의 위치에서는 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현재

 2023년 연봉계약서 서명을 완료했다. 회사 사람들은 많은 불만을 블라인드에 올렸지만 솔직히 페이만 생각하면 난 회사가 마음에 든다. 중소기업 기획자로 근무할 때 월 170~180을 품에 안고 이걸 어떻게 저축할지 고민하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월에 350 이상을 받는 삶은 너무나도 감사한 것이다. 돈만 봐도 개발자로 전향한 것은 절대 후회 없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발전에 대한 욕심이 있고,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다. 두렵지만 이직에 도전해서 성공하면 현재 회사와 이별하며 더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패해도 회사와의 이별은 실패하지만 나의 성장은 남으니 무조건 도전하는 것이 이득 아니겠는가?

 구직 사이트를 켰다. 실무만 해치우다 보니 내 능력치를 말로 표현할 줄 몰라서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에 내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트를 둘러보며 나라는 인간을 말로 정리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은데 이걸 깔끔하게 표현할 줄 모르니, 할 줄 안다고 어필하기엔 다소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직을 검색하다 어떤 블로그에서 이런 문구를 봐서 메모를 따로 해둔 적이 있다.

나는 압도적인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작고 소중한 강점과 언젠가 고쳐야 할 단점을 잘 꾸며서 어필해야 한다.

  그래서 올해 목표를 이직으로 두기보다는, 이력서를 갱신해 보기로 했다. 무작정 해치우던 걸 잠시 멈추고 정리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Ember.js, C#)보다 보편적인 언어(Vue.js, React.js, Node.js)를 배워보면서 나를 스스로 담금질해 보기로 했다.

 개발자는 특정 언어 skill이 강한 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특히 저연차일수록 기본기가 얼마나 튼튼한지가 내 이직을 좌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공자여서 네트워크나 알고리즘 등 전공자에 비해 약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 동료들과 얘기할 때도 전공자들이 숨 쉬듯 생각하는 걸 나는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떠올리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2023년에 만들어질 나의 흔적을 블로그에 새기기 전 다짐을 미리 남긴다. 어디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1월에 킥오프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팀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참여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따로 Vue.js와 React.js 수업을 수강 중이다. 만료된 정보처리기사 필기를 재취득할 예정이고, ADSP 공부도 시작해보려고 한다. 네이버블로그와 기술블로그도 분리하고, 깃허브도 새로 만들어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도전!


 나의 몇 년을 한 페이지에 담고 보니 생각보다 짧은 것 같다. 사실 이런 건 성공한 뒤 수기를 작성해야 더 멋지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럴 깜냥이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소문을 열심히 내둬야 쪽팔리지 않으려고 뭐라도 해내게 된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건 멋이 없으니까. 글솜씨가 화려하진 않아 잘 적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과거를 돌아보니 미래를 향한 의지가 더 굳건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니 올해의 나에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하겠다.